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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5
유당 류시호 화백, 수묵산수화의 거장 유당 류시호, 먹빛에 담은 산과 바람
김보승 최예원 기자ㅣnews@weeklypeop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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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산수화의 거장 유당 류시호, 먹빛에 담은 산과 바람

유당 류시호 화백 | 허베이 미술대학 교수

동양화는 선의 예술이다. 선이란 한 번에 힘을 담아 그어야 하며 그은 자리를 다시 그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수많은 붓질로 먹을 켜켜이 중첩해 쌓아가는 작업방식을 고집하는 작가가 있다. 류시호 화백은 침묵의 대가이다. 그는 기존의 적묵법에서 더 정진하여 평면(종이)아래로도 먹의 두께를 더한다는 뜻의 침묵의 영역에 이르렀다.
동양화 중에서도 산수화는 가장 으뜸으로 치는 미술 양식이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은 산줄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녹음도, 유당의 붓이 닿는 순간 화폭 안에서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유당의 작업은 언제나 곧고 바르다. 대자연을 마주하는 곳 어디든 그만의 화실이 된다. 대자연의 품 안에서 바람을 담아내기로 결심한 화가, 유당 류시호 화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취재/글_김보승기자, 최예원 기자

● 성찰, 그리고 중국
“제가 2003년도에 대작을 가지고 개인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개인전이 끝난 후 제 자신에게 돌연 자문자답하게 되더군요. 그림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일까? 뿌리 없이 그림을 그려온 느낌,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문득 내 그림의 뿌리가 중국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마흔이 넘는 나이에 과감한 결단을 해서 중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죠.”

류시호 화백은 1980년에 미술계에 입문하여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80여 차례 국내외 단체 공모전에서 미술활동을 해왔다. 그러던 중 2004년 단신으로 홀연히 중국 북경으로 유학하여 중앙미술학원 국화과에서 본과 4년 및 대학원 3년 과정을 거쳤다. 중국예술연구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이 10여년의 기간 동안 중국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서예, 전각, 전통 및 현대미술의 기본기 습득 등 여러 창작활동을 병행해왔다.
특히 2011년 중앙미술학원 졸업전에서는 90년 학교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수상자가 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중국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서울 라메르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습득한 적묵법을 기조로 하여 새로운 수묵 기법의 현대적 수묵산수화 40여점을 발표, 국내외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2년 중국 양저우에서 50여점의 수묵산수화를 선보이며 중국화단의 지대한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2013년에는 제8회 서울오픈아트페어 갤러리 라메르의 대표작가로 참가하여 또 한 번 한국화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재중국한인미술협회를 조직하여 현재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허베이 미술대학 중국화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와 더불어 천자문을 소재로 한 수묵산수화 1000점 시리즈작품을 제작 중에 있다.

● 작품 세계와 영혼
20세기 중국화가 중에서 중국 근현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화가를 한명 꼽는다면 단연 리커란(이가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리커란은 관념적인 그림그리기를 그만두고 자연으로 돌아가 사생으로의 전념을 부르짖었다. 이는 류시호 화백의 사생 중심 창작관과 매우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리커란은 중국산수화 발전에 있어서 이정표를 세운 큰 거목이다. 2013년 중국 최고의 미술관인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리커란 전시회>에서는 그의 작품 38점이 전시되었는데, 그 그림들의 총액은 한화로 7,220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 만산홍편이라는 작품은 경매가가 544억원에 낙찰되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렇듯 금액적인 측면만 살펴봐도 중국인들의 리커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리커란은 면에 의한 묵법을 탄생 시켰다. 이전까지 중국산수화에는 질감과 촉감의 개념이 분명치 않았다. 리커란은 적묵법을 통해 자신만의 ‘부피, 무게, 빛’을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중국 산수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류시호 화백은 리커란의 넓고 두터운 묵법에 완벽하게 자신의 색깔을 더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냈다.
류시호 화백은 중국미술계로부터 ‘리커란의 기법을 계승한 작가’라는 극찬과 함께 용묵 또한 대단히 중후하고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감투시의 구도’라고 불리는 류시호 화백의 작풍은 중국 화단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고, 중국 수묵화와 한국 회화의 융합을 이끌어낸 선구자로서의 면모도 갖추게 되었다.



● 수묵산수화
수묵산수화를 그리기 위해 유당은 언제나 험한 산 깊은 계곡을 찾아 떠난다. 그는 대자연 앞에서 항상 겸손한 자세로 신중을 기한다. 화폭 위, 그의 붓놀림에서는 높은 폭포수와 같은 힘이 느껴지고 절벽 위의 노송과 같은 대담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부드러움과 섬세함도 화폭 주변을 은은하게 맴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묵빛은 더욱 진중하게 빛난다. 아름다운 자연의 선율과 화백의 순수한 마음이 합쳐지자 절경이 여백위로 쏟아진다.
허투루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은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배경으로 어떤 시간에 바라보느냐에 따라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중국에서의 사생 중 유당은 이색적인 풍광들을 무척 많이 만났다. 그 속에서도 화백은 언제나 우리 산수의 모습을 함께 떠올렸다.
어쩌면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정도만 끝낸 후, 화실로 가서 그림을 마무리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편한 작업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당은 매번 자연과의 합일을 고집하고 있다. 일단 한 획이 그어지면 4시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유당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붓놀림에 혼을 담는다. 이 과정에서 화백은 눈으로 마주하는 자연과 화폭 속 풍경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물아일체의 찰나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흐르는 시간을 담아 그린 그림이 완성된다. 작품은 화백의 손을 떠나도 감상자의 시선을 따라 영겁 속으로 끊임없이 유영한다.

“사생(寫生)이란 회화에 있어서 제가 굉장히 중시하는 부분입니다. 살아있는 것을 그린다는 의미는 언어적인 표현만으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작업이죠. 중국에 온 이후로 저는 모든 작업을 사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소요가 되는 편이죠.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 그림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보통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한 점 정도를 그려내는 편인데, 저의 경우 하루에 고집스럽게 두 점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소 오전에 네 시간, 오후에 네 시간은 야외에서 작업을 하고 있죠.”



●고된 사생의 길
수묵화는 먹을 이용하여 단숨에 붓으로 완성하는 그림이다. 그리는 방식은 일회성을 띠지만 그 과정은 매우 험난하여 혹독한 수행을 필요로 한다. 올곧은 한 그루의 소나무를 그려내기 위해선 8000그루의 소나무를 그려보아야 한다. 수묵화는 문인의 그림으로 형상을 닮되 닮지 않아야 하고 작가의 사의를 그려내야 수묵화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사생 여행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사생 수업이라는 말을 쓰지요.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수업을 교실에서 하지 않고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사생의 대부분은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원시적인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된 길이지요. 낙후된 환경 속에서 수묵화를 그려내는 것은 끝없는 인내의 연속입니다.”

유당의 사생일기에는 인고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시멘트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물 위에서 잠을 청한 일, 원래 버스가 오를 수 없는 한 폭의 좁은 길을 4시간이 넘도록 힘겹게 오르던 아찔한 순간, 지나가던 양떼가 화판을 바닥에 엎어버리는 바람에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했던 기억, 옥수수 밭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한 촌로가 밭에 인분을 부어버리는 바람에 작업 내내 코를 부여 잡아야했던 난감한 경험 등, 류시호 화백의 사생에는 필묵의 묵직함과 동시에 잔잔하고 소박한 우리 옛 일상의 정서가 함께 느껴진다. 이처럼 그는 위대한 대자연을 화폭 위에 그려내면서도, 그 사이에 우리의 일상미 또한 녹여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영혼을 가졌다. 험난한 고행의 길속에서도 그는 항상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림은 화가 자신을 닮는다고 했다. 그러기에 나의 그림도 예외가 아니다. 나의 그림을 얼핏 보면 우선 검다. 검은 피부의 나와 꼭 닮았다. 속까지 검은 거야 말해 무엇하랴…이는 나의 예술인생의 여정에서 줄곧 생각해 왔던 검고 검은 먹색으로써 도교철학이 담고 있는 이상을 표현하려한 것이다. 러나 나의 그림이 처음부터 이렇게 검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그림 속에는 무수히 많은 언어들이 들어 있었다. 내보이기 어려운 거칠고 투박한 것, 어설프고 부족한 것,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마음의 유종, 이런 것들이 질서 없는 혼돈의 상태에서 저 마다의 절규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적묵(積墨)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나씩 그것들을 지워 나간다. 나는 이를 ‘침묵(沈墨)’이라 말한다. 이렇게 끝없이 표출하려는 마음의 욕망들을 지우고 또 지우다 보니 나의 그림은 어느 새 먹의 바다가 되고 만 것이다.“



이미 수십 번이나 오른 봉우리에서도 매번 다른 풍광을 발견한다는 류시호 화백. 어쩌면 지금 그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수묵산수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굵고 거친 먹선을 통해 나타내고 싶은 것은, 아마도 우리들의 짧고 애절한 생애에 대한 끝없는 자기 성찰이 아닐까.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동경한다. 그리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길 간절히 열망한다. 블로그에 그가 남긴 소개말의 마지막 문장처럼.

‘천만봉우리로 대변되는 대자연이 묵묵히 지켜 봐 줄테니까요.’

화백은 아마 지금도 산을 오르고, 계곡을 건너며, 붓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가 자연을 존경하는 만큼. 산이 화백을 사랑하는 만큼. 매번 세차게. 때론 숨 가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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