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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이해선 사진작가, 오지에서 찾은 가치·시공간 너머의 세계를 기록하는 시간여행가
김유위 기자ㅣnews@weeklypeop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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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해선 사진작가 | 에세이스트

오지에서 찾은 가치·시공간 너머의
세계를 기록하는 시간여행가

이해선 사진작가 | 에세이스트


온전히 떠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이해선 작가는 미지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며, 사막으로, 천년 동굴로, 고대 유적지로 향한다. 필요한 것은 오직 자유로운 정신과 사진기뿐. 그는 오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사라진 시간 너머 잃어버린 것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있다. 그저 바람결에 몸을 싣고 여행이 곧 삶 자체인 일생을 통해 영혼의 울림과 환희의 순간을 예술로 표현해 왔다. <위클리피플>은 오지를 탐험하고 폐사지를 서성이며 텅 빈 충만함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치를 사진과 글로 풀어내는 이해선 사진작가, 에세이스트를 만나 그가 걸어온 시간 속으로 함께 떠나봤다.
취재·글_김유위 기자, 김은혜 기자

자연을 품은 사진작가
동경의 세계를 예술로 승화

남해의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해선 작가는 선원이었던 아버지가 들려주던 먼 나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평선 너머의 세상을 동경했다. 파도소리와 함께 세계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리던 그는 지도의 서쪽 끝 리스본으로 첫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에 이른다. ‘문학소녀’이기도 했던 이 작가는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를 읽고 사진의 세계에도 푹 빠졌다. 그 영향으로 철학적인 사진을 추구하게 됐고, 홍익대학교 강동문 교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웠다. 이후 세계적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풍의 작업 방식에 영감을 받아 표준렌즈 하나로 촬영하는 등 여러 시도를 거쳐 예술가로서 역량과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나갔다.

이해선 작가는 자신의 사진 인생을 반추하며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한 노인을 떠올렸다. 사하라 사막에서 평생을 소금 캬라반으로 일했던 노인은 어느 날 도로가 생기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갑작스럽게 도시빈민이 된 그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고. 이해선 작가는 어쩌면 자신의 일생이 그 노인이 그리워하는 향수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현대문명 속에 부대끼며 살지만, 원초적인 삶과 자연의 원형을 동경하는 것일 터. 그렇게 그는 이국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끊임없이 오지를 찾고 광활한 자연 앞에 서는 것이다. 이해선 작가는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고, 숨 막히게 가슴 벅찬 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는 시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말을 떠올렸다.

“저는 풍경 앞에서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 많았거든요. 압도되는 광경을 보면서 마야 안젤루가 했던 말을 되새깁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숨 막히게 가슴 뛰면서 봤던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갈망하죠. 여행지에서 바라보는 벅찬 자연의 모습은 가슴에 신을 깃들게 하고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켜요. 그 풍경들이 마음속 깊은 현(絃)을 건드려 영혼의 소리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런 풍경 앞에서 저는 직관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요.”

사진=Tibet, 1997 이해선


기록하는 일이 사명,
‘오지 여행’ 통해 삶을 치유하다

이해선 작가에게 ‘인도 라다크’는 마음의 고향이자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Hodge)의 『오래된 미래』에 감명을 받고 라다크 여행을 시작한 그는 먼 타지에서 우리의 과거이자 이제는 잃어버린 시절을 발견했다. 예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 간의 사랑과 끈끈한 정이 넘치는 라다크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마음의 빈 곳을 메우고 그들과 동화돼 갔다. 특히 라다크의 히말라야산맥 골짜기 안, 천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동굴사원’에서 그는 생을 관통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과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절절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찾은 동굴사원에서 이해선 작가는 여름 한철을 넘게 보냈다. 미소를 잃지 않는 어린 라마승과 거대한 자연 앞에서 비로소 극한에 내몰린 자신을 보듬고 번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라다크의 환경과 사람을 통해 삶의 평온을 되찾는 진솔한 과정을 포토에세이 『인연 언젠가 만날』을 통해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제는 어릴 적 살던 집터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라다크를 제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발 고도가 4천 미터라 생활하기 굉장히 불편하고 열악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인정이 남아있어요. 라다크 사람들은 전부 저를 가족처럼 대해주고, 인간미와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역시 사람이 제일 소중하다고 느껴요. 그런 뭉클한 경험 때문에 제가 계속 라다크로 향하는 것 같아요.”

이해선 작가는 여행지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영양실조에 배탈이 나 병원에 실려 갔는데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왔고, 절체절명의 순간 의료진의 노력으로 간신히 살아난 적이 있다. 동굴 사원을 다녀오던 중 말에서 떨어지며, 벼랑 끝으로 떨어질 뻔했던 아찔한 경험도 있다. 당시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말의 목을 껴안고 버텼다고 회상하며, 그 찰나에도 오로지 ‘라다크에서 찍은 필름을 현상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며 필름 생각뿐이었다고. 2018년도에는 부정맥 진단을 받았는데 갑자기 추운 곳에 가면 정신이 번쩍 들어 아프지 않겠다는 생각에 홀로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이해선 작가는 텅 빈 충만함을 얻었고, 여행을 다녀온 후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에도 고조선 답사팀과 몽골을 다녀왔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체력적 한계를 염려하며 인생의 마지막 오지 여행이라 각오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에서 물이 떨어져 잔뜩 긴장한 일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여행은 잊지 못할 환희의 순간을 선물했다. 이해선 작가는 몽골 사막에서 발견한 구석기 동굴벽화와 암각화를 바라보며 1만 5천 년 전의 시간을 뛰어넘어 태초의 인류를 만났고, 큰 감명 받았다고 되뇌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정말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데, 저는 운 좋게 살아남았잖아요. 그래서 제 사진과 글은 ‘살아남은 자의 기록’들인 셈이에요. 그렇게 기록하는 일을 사명으로, 때때로 삶이 느슨해질 때면 오지여행을 떠나면서 살아왔어요. 제게는 여행이 약이고 저만의 살아가는 방식이고 힘을 얻는 동력이거든요. 지금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오지로 떠나고 싶어요.”

사진=Ladakh, 2008 이해선


신화적 체험이 ‘폐사지’ 작업으로,
과거와 현재 잇는 ‘시간여행자’

93년도에 그리스 델피를 여행하던 중, 이해선 작가는 눈 내리는 고대유적지에서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다. 빛이 쏟아지는 올리브 나무 아래 서 있던 그는 마치 자신이 그리스 신화 속에 흡수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 강렬하고 특별한 경험은 이후 그가 절터를 찾아다니며 스러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담는 ‘폐사지’ 작업에 열중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델피 유적지에서 제가 그리스 신화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확 받았어요. 이 신화에 관한 느낌을 어떻게 내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귀국했는데, 한국의 익산 미륵사지, 폐사지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죠. 그때 ‘아! 내가 이 작업을 해야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93년도부터 폐사지 작업을 시작했죠. 그렇게 백제나 신라시대 절터를 찾아다니면서 저는 몇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자’가 된 거예요.”

이해선 작가는 ‘시간여행자’로 절터를 서성이며 폐사지 사진을 찍는 일을 생의 과업이자 순례 여행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많은 작품이 시간을 주제로 그려졌다. 첫 번째 전시 ‘낯선 시간들’부터 폐사지 사진전시회 ‘비움, 그 숭고의 미학’까지. 시간에 맞닿은 감성과 남다른 체험을 담아냈다. 이런 작업이 고스란히 쌓여 올해는 폐사지에 관한 새 책도 출간하고, 부지런히 사진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틈날 때마다 황량한 절터로 향하는 이해선 작가는 성실하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며 시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폐사지가 황량하게 버려져 있지만, 서글프다기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장엄하다고 느낍니다.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탑 하나가 간신히 서 있는 절터에서 저는 백제로, 신라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요. 그렇게 갑자기 세계가 막 넓어지는 거죠. 보는 이들에게도 이러한 느낌과 감성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가이자, 스펙트럼이 넓은 사진작가로 비쳤으면 좋겠어요.”

사진=강진 월남사지, 2020 이해선


시선집 ‘새롭게 또 새롭게’ 출간
김태균 원장의 의료철학과 맞닿아

최근 이해선 작가는 ‘아름다운 노인을 위한 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티케이정형외과 김태균 원장과 공동 작업한 저서 『새롭게 또 새롭게』를 출간했다. 이해선 작가의 사진과 김태균 원장이 선정한 명시와 명언을 엮어 만든 이 시선집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짙은 여운과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과거 김 원장은 병원 재활센터에 이해선 작가의 히말라야 사진을 크게 걸어두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환자들이 이해선 작가의 사진에서 희망을 보고, 무릎 재활 치료에 성공해 직접 그 풍경 앞에 설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이해선 작가 역시 김태균 원장의 의술과 마음 씀씀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환자들의 눈을 마주 보며 진심을 전하는 김 원장의 모습이 마치 자신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카메라에 풍경을 담듯 숭고해 보였다고. 두 대가(大家)의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삶의 공력이 고스란히 담겨 시선집으로 탄생했다.

“제가 사진을 찍는 목적 중 하나, 어떤 기도와 같은 지점이 있어요. 누군가 내가 찍은 이 사진을 보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요. 그런 사진 속 염원이 티케이정형외과 김태균 원장님의 의료철학과 같은 맥락으로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환자들의 무릎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하겠다고 하시는 원장님을 보면서, 그 거룩한 마음에 저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로운 오지 메타버스로 향하다
‘디지털 노마드’로 세계관 확장

메타버스 시대를 맞아 이해선 작가는 생동하는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담벼락 삼아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며 꾸준히 자신을 표현해왔던 그는 자리를 옮겨 메타버스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해선 작가는 마치 새로운 여행지라도 발견한 듯 해사하게 웃으며 눈을 빛냈다. 변화 앞에 주저하거나 지친 모양새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미지를 향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는 나이 든 사람도 충분히 같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가상공간의 탄생이 즐겁다고, 나이는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고 웃어 보였다.

다만 이 작가는 확장된 세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세일즈하라’고 조언했다. 과거 킬리만자로에서 셰르파(Sherpa)를 자처하며 자신의 셀링 포인트를 어필하던 소년, 필몬의 이야기를 전하며, SNS상에 공유하는 개인 콘텐츠를 더 가치 있게 재구성하라고 당부했다. 광대한 가상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한다면 자유로운 시대정신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란 의미다. 이제 이해선 작가는 오지에서 평화를 찾고 잃어버린 가치를 좇던 유목민에서 나이와 시공간의 규범적 한계를 벗어던진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e)로 거듭나고 있다. 거침없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돌린 그가 일궈낼 찬란한 세계관과 또 다른 가능성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페이스북을 오래 하면서 메타버스라는 특이한 가상공간에 들어섰는데요. 이 작은 발걸음을 시작으로 제 미래의 여행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노마드(유목민)의 삶을 살아온 제게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체력이 안 돼서 오지 여행을 더 못 간다고 해도 새로운 공간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메타버스의 공간으로 좀 더 비집고 들어가 보려고요. 왜냐고요? 설레잖아요!” 사진제공_이해선 작가

profile

세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과 풍경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사진가이자 에세이스트. 사물과의 깊은 교감을 절제된 앵글에 담아 사진을 찍고, 귀엣말로 들려주는 옛 이야기처럼 다정다감한 느낌이 묻어나는 글을 쓴다. 1993년 바탕골미술관에서 첫 개인전 〈낯선 시간들〉을 열었고, 2008년에는 한국의 폐사지를 사진에 담은 두 번째 전시회 〈비움, 그 숭고한 미학〉을 열었다. 저서로는 티베트 방랑기 『10루피로 산 행복』, 이스트섬 여행기 『모아이 블루』, 삽살개에 관한 기록 『울지마 자밀라』, 세계 오지여행기 『내 마음속의 샹그릴라』, 제주 올레 포토 에세이 『제주 올레』, 라다크 여행기 『인연 언젠가 만날』, 명시와 명언, 그리고 오지 사진을 엮은 시선집 『새롭게 또 새롭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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