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채 법무법인 정박 대표변호사, 실무에서 입법까지 불공정의 구조를 개편하다

사진=정종채 법무법인 정박 대표변호사

거대 권력에 맞서 ‘을’의 편에 선 법조인
실무에서 입법까지 불공정의 구조를 개편하다

정종채 법무법인 정박 대표변호사

거대 공룡기업의 그림자 아래, 수많은 ‘을(乙)’이 오늘도 숨죽여 버틴다. 불공정한 계약과 부당한 내부거래, 반복되는 불평등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두운 구조 한복판에서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세우는 이가 있다. 바로 법무법인 정박의 정종채 대표변호사다. 그는 국내 유수의 대형 로펌 파트너 자리를 내려놓고, 중소기업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길을 택했다. 대기업과 불균형한 관계에 놓인 중소기업들을 위해 공정거래, 하도급, 조세, 기업 분쟁의 전장에서 현실의 부조리에 맞섰다. 그의 수많은 의미 있는 판결은 단순한 승소를 넘어 법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발자취로 평가된다.

대표적 사례는 ‘한국GM 사태’다. 그는 산업은행과 함께 10억 달러 규모의 국제 분쟁으로 GM의 일방적 철수를 막아내 국내 고용과 산업 생태계를 지켜냈다. 또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정책에 맞서 세계 최초 모바일 플랫폼 반독점법인 ‘반구글법’ 제정에도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 하도급법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하도급법 이론과 실무》, 《내부거래 해설과 쟁점》 등 저서를 통해 학계와 실무 현장 모두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위클리피플>은 그 치열한 신념과 실천의 길을 직접 들어보았다.

취재·글_이나현 기자, 박진아 기자

30년 경력, 다학제적 시야 갖춘 ‘입체형’ 법률가

정 변호사의 폭넓은 활동은 다채로운 이력에서 비롯된다. 울산 학성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뉴욕대 로스쿨을 거쳐 북경어언대학교 연수와 세종–시라큐스 MBA로 경제·경영·법률을 아우르는 시야를 쌓았다. 한국과 미국 변호사 자격은 물론 세무사와 변리사 자격까지 겸비한 그는 국세청과 국내 대형 로펌인 태평양과 세종에서 약 30년간 실무를 누비며, 특히 건설 하도급, 경영권 분쟁, 조세 이슈 등 복합 사안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발휘해왔다. 2020년에는 박현욱 대표와 함께 선박금융과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특화된 법무법인 정박을 공동 설립해 새로운 법률 서비스를 제시하고 있다. 법무법인 정박의 가장 큰 특징은 의뢰인이 스스로 문을 두드린다는 점이다. 대규모 상담보다 신뢰와 전문성을 중시하며, 별도 홍보 없이도 기존 고객의 재의뢰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간다.

국가 산업과 공정시장, 두 전장을 관통하다

정종채 변호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꼽는 것은 ‘한국GM 사태’다. GM이 한국GM의 핵심 기술권을 회수하고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기려 하자, 국내 대형 로펌들이 대응 불가를 선언한 상황에서 그는 투자 계약과 주주 합의를 면밀히 분석해 GM 주장의 법리적 약점을 찾아냈다. 산업은행과 정부를 대리해 70여 명의 전문가 팀을 이끌고 10억 달러 규모의 국제 분쟁을 추진하며 GM 본사를 압박했고, 결과적으로 1조 5천억 원의 보상과 7년간 공장 철수 금지 확약을 이끌어냈다.

7년 뒤 GM이 회생 신청과 물적 분할을 시도하자, 그는 ‘공동 기술권’을 지렛대로 협상에 나서 수조 원 규모의 추가 출자를 이끌었다. 분할 금지 가처분 신청이 1심에서 기각되자 끝까지 항고해 직접 법정을 설득했고, 전례 없는 가처분 인용으로 부평과 창원 공장의 일자리를 지켜냈다. “17년간 한국GM을 붙잡아 놓았습니다. 15만 명 넘는 고용을 지킨 책임 있는 싸움이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 성과의 무게를 드러낸다.

2020년에는 구글과 애플의 인앱 결제 강제 정책에 맞서 국내 첫 모바일 플랫폼 반독점 입법인 ‘반구글법’을 이끌었다. 처음엔 소규모 스타트업의 공정위 신고를 도우며 시작했지만, 국회 요청으로 입법 지원까지 확대됐다. 법조계와 학계의 거센 반발에도 수백 차례 세미나와 공개 토론으로 논리를 설득해냈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사전적 플랫폼 독점 규제법이 탄생했다. 이는 일본과 유럽의 벤치마킹으로 이어져 디지털 공정경제의 새 기준이 되었다.

“저는 본래 비즈니스 로이어입니다. 하지만 이 싸움에는 경제적 대가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사후 규제만으로는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할 수 없기에 반드시 선제적 입법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그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습니다.”

학문과 실무 잇는 길목에서, ‘을’ 위한 문장 쓰다

정종채 변호사는 바쁜 실무 일정 속에서도 저술 활동을 통해 법률 실무와 이론 간의 간극을 좁히는 데 꾸준히 힘써왔다. 대표적인 저서인 《하도급법 해설과 쟁점》은 2017년 초판 발간 이후 현재 제6판까지 개정되며, 하도급법 해석의 기준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판 발간 당시 큰 호응을 받았고, 지금은 6판까지 나왔습니다. 그만큼 내용을 거듭 개정하며 깊이를 더했지요. 이 책이 없었다면 하도급법의 발전은 제자리걸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산을 옮기듯 긴 시간 연구하고 집필해야만 법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지금도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저서인 《내부거래 해설과 쟁점》(2021)은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둘러싼 법적 쟁점을 총망라한 해설서로, 이 분야에서 사실상 국내 최초의 이론적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정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세법, 상법, 형법 등 관련 법령 전반을 망라해 실무상 핵심 이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국내 판례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조세심판원 등 유관 기관의 사례와 미국 등 주요 국가의 해외 판례까지 분석해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해석을 시도했다. 특히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관행을 정면으로 고발하고 해부한 국내 최초의 이론서로 평가받으며,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실무 지침서로서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대형로펌을 나와 법무법인 정박을 설립할 때부터, ‘을’을 위해 싸우겠다는 각오를 품었습니다. 이후의 하도급법 연구나 제가 집필한 책들 또한, 모두 그 방향성 위에 놓여 있습니다. 《내부거래 해설과 쟁점》은 단순한 실무 해설서를 넘어, 실무와 학문을 연결하고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아낸 결과물입니다.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고 믿기에, 상법이 개정되는 즉시 개정판 작업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묵묵히 쌓은 법률가의 길, 이제는 이름 너머로

정 변호사는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사회에 실질적 기여를 남기기 위해 자신을 다시 한번 단련하고자 한다. 일의 즐거움과 직업적 책임감 그리고 다가오는 유한한 시간에 대한 인식은 그에게 또 다른 성장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일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시작은 늘 고통스럽지만, 마라톤처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쾌감이 찾아옵니다. 또 하나의 힘은 ‘프로’로서의 책임감입니다. 부족함과 실수가 있기에 더 노력하게 되지요. 요즘은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노안도 왔습니다. 앞으로 7~10년이 제가 사회에 고급 노동력으로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것입니다. 법조계에서 제 이름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명사라 할 수는 없습니다. 60세 이후에도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지금 스스로를 더 성장시키려 합니다. 평판과 기여로 이어지는 삶, 바로 그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정박은 이제 새로운 비전을 그리고 있다. 그동안 내실과 수익성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외형 확장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유튜브 채널을 재정비해 기존의 하도급법·조세법 중심의 전문 강의에서 벗어나, 보다 대중적인 주제로 법을 풀어내며 사회와의 접점을 넓히고자 한다.

정종채 변호사는 자신의 철학을 가장 잘 담아내는 구절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군불견간소혜」 속 ‘장부개관사시정(丈夫蓋棺事始定)’을 꼽는다. “한 사람의 삶과 행적은 죽은 뒤에야 비로소 평가된다”는 이 말은 생전의 모든 발자취가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참으로 드러난다는 깊은 통찰을 품고 있다. 변화의 물살 속에서도 스스로를 단련하며 진정한 평가에 이르려는 의지, 그것이 그의 신념이자 긴 여정을 지탱해온 힘이다. 오늘도 그는 ‘을(乙)을 위한 법률가’라는 초심을 품고, 불공정의 구조 앞에 묵묵히 맞서며 누군가의 무거운 하루를 덜어내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사진제공_법무법인 정박

profile

자격
한국변호사(연수원32기, 사법시험 42회),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1997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

학력
1992 울산학성고 졸업
2000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경제학사)
2003 Sejong-Syracuse M.B.A.(경영학 석사)
2007-2008 미국 New York University(NYU) School of Law (LL.M.)
2008-2009 북경 어언대학교 연수

이력사항
1999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사무관
2000 국세청 징세과 사무관
2000~2001 제주세무서 납세지원과 과장
2001~2003 국세청 총무과 사무관
2003~2009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2009~2019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변호사
2010 기획재정부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편위원
2010~2012 공정거래위원회 자진신고제도 법령개선특위 위원
2010~2015 국세청 국제조세 법령개선 전문가 위원
2013~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정거래법연수원 교수
2014~2023 중부지방국세청 징계위원
2016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회 위원
2018~2020 서울지방국세청 조세법률고문
2020~2024 중부지방국세청 조세법률고문
2019 LH 건설하도급 및 노무관리 자문위원장
2019 경기도시공사 법률고문
2019~2024 대한전문건설협회(서울) 법률고문
2019.6~ 한국하도급법학회 회장
2019~ 해양수산부 공적심사위원
2020 경기도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위원
2021.7~ 경기도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원
2021~2023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고문
2022~2028 경기도 공정거래자율분쟁협의회 회장
2022~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분야 상생협약평가 위원
2024~ 공정거래위원회 내부거래 자문위원
2024~ 공정거래위원회 하도급법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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