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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0
이정호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 국악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작곡가
김유위 기자ㅣnews@weeklypeop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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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정호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

전 세계 무대를 향한 힘찬 도약
국악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작곡가

이정호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 | 작곡가


국악의 이미지, 선율을 생각할 때 어떤 분위기를 떠올리는지 궁금하다. 혹시 한국인 특유의 멋과 흥을 계승하는 고루한 장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다양한 장르와 혼합하여 퓨전 국악의 시대를 열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악이 지닌 신명나는 희열과 메시지는 우리에게 아직, 조금 먼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5천여 년의 긴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국악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이에 본지는 국악을 잇고, 듣고, 향유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사방에 온통 새로운 것이 피어나고 깨어나는 봄날, <위클리피플>은 우리의 음악 정신을 다채로운 방향으로 탐구하고 창조해 내는 이정호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를 만났다.
취재·글_김유위 기자, 윤혜은 기자

이정호 교수가 남기는 악보 위의 궤적

이정호 교수는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에서 작곡 전공을 가르치는 교육자이면서, 국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음악가이다. 음악가는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늘 궁금했다. 이 교수는 어릴 때부터 위인전 읽기를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생이었다고 했다. 기자야말로 위인전을 읽는 기분으로 그의 현재진행 중인 음악 인생에 귀를 기울였다.

“위인전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어린아이였어요(웃음). 일찍이 피아노를 배우면서부터 클래식에도 빠져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빈소년합창단이 부른 헨델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들으며 이런 역사에 남을 곡을 쓰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어요. 저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꿈을 꾸게 해준 음악이었죠.”

처음엔 클래식 음악을 하고 싶다는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 이 교수는 어떤 음악가가 되어야 할까 즉각 고민하기 시작했단다. 연주자, 작곡가 중 작곡을 선택한 이유 역시 그가 즐겨본 위인전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어린 시절 우리의 책장을 한 번씩 차지했던 주인공들이 이정호 교수에게 말하고 있었다. 작곡을 하라고, 너도 위인전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어렸지만 작곡가라는 확고한 꿈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나니, 중학교 때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았어요. 특히 음악선생님께선 작곡 레슨선생님도 소개해 주시고, 방과 후엔 매일 무료로 피아노 레슨을 직접 해주셨어요. 어린 친구가 도전정신을 갖고 나아가는 것을 열렬히 응원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조주희 선생님... 저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시죠. 그 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꿈을 위해 작곡 공부에 더욱 매진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이준호 선생님 작곡의 국악관현악 <축제>를 듣게 되면서 국악 작곡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지금까지 공부해오던 클래식과는 또 다르게 제 마음에 울림을 전하더라고요. 역사에 유독 흥미를 가졌던 것과도 장르의 성격이 일치하는 것 같았고요.”

클래식으로 음악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한 그는 마침내 국악작곡으로 대학 입시를 치르게 된다. 당시 영남대학교의 이해식 교수를 ‘큰 선생님’이라 부르며 그의 가르침 아래에서 이정호 교수의 본격적인 국악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대학에 진학한 것은 ‘10대 시절의 이정호’가 이룬 첫 번째 꿈이었으리라.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고 굴을 파 들어가 앉는 슬럼프가 오기 마련이다. 창작자라면 더할 것도 없이 그렇다. 이 교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음악을 지속할 수 있던 원동력을 묻자, 그는 음악으로 힘이 들어도 결국 음악의 소중함으로 인해 음악을 다시 찾게 된다고 답했다.

“저는 군악대에서 군 생활을 보냈는데요, 거문고를 조금 다룰 줄 알아서 악기로 시험을 쳐서 들어갔어요. 당시에 연주할 기회가 여럿 있었을 때, 문득 작곡이 겪는 ‘창작의 고통’보다 수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는 거예요. 연주는 창작의 영역과는 조금 떨어져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말이죠. 한참을 연습하다가 ‘거문고로 전공을, 진로를 바꿔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도 하기에 이르렀죠. 그런데 막상 거문고만 붙잡고 있다 보니 생각처럼 오래 연습을 이어가지 못하더라고요. 작곡을 하면서는 괴롭기는 하더라도 졸음에 못 이겨 자고 싶다, 피곤하다 이런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때 제가 작곡을 얼마나 좋아하고 즐겨 하는지 새삼 깨달았죠. 작은 힘듦이든, 어떤 힘듦이든 제가 소중히 해왔던 것을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제 길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창작활동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거의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 가운데 음악을 직접 만들고 완성할 때의 기쁨과 성취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올라 연주가에 의해 연주되고, 관객으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그는 음악가의 작업은 모두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음, 한 음이 ‘이정호 교수’라는 사람을 선율 안에서 표현하는 방법인 셈이었다.

“저는 주로 하늘을 자주 보며 영감을 얻어요. 대학생 때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하늘을 봤는데 정말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이, 막 헤엄치고 싶은 하늘이었어요. 그 순간 이미지나 음계들이 떠올라 단숨에 곡을 썼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 이후로는 비슷한 풍경을 볼 때 작곡에 좋은 영향을 받더라고요. 한낮의 하늘이 아니라도 밤하늘의 별, 깊은 우주, 나아가서는 드넓은 자연이 품고 있는 세계 등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어요. 이 세상 안에서 내 삶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고 나만의 메시지를 음악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일기장처럼 마주하는 악보들
그 위에 채워지는 ‘인생의 노래’

이 교수가 몸담고 있는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는 가야금, 거문고, 피리, 대금, 해금, 아쟁, 타악, 가야금 병창, 민요, 정가, 판소리에서부터 이론, 작곡까지 국악의 모든 전공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과다. 규모도 대단할뿐더러, 이토록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구성해가면서 음악에 매진하는 학생들을 보면, 이 교수 역시 미래의 더 멋진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학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국음악학과는 졸업 후에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어요. 국공립 관현악단에 입단할 수도 있고, 프리랜서 연주자로서 개인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죠. 교육기관에서 음악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예술 단체 기획자, 작곡가, 이론가 등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답니다. 그중 국악작곡은 국악뿐만 아니라 클래식, 실용음악, 월드뮤직 등 국악기로 연주하는 모든 창작 음악에 대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장르이자 학문입니다.”

한편, 이 교수는 전통을 계승하는 장르이다 보니 오늘날 국악이 자신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동시대를 반영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장르의 음악들보다 더 참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음악론이다.

“제 꿈은 국악을 세계로 크게 뻗어나가는 데 일조하는 거예요. 다음 세대에게 지속해서 국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픈 의무감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대에 맞춰서 가야 하거든요. 국악의 방향성을 창의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음악가로서의 제 역할이겠죠. 사실 저는 작곡가로서의 삶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작품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제자들을 잘 양성해 더 많은 기회를 나눠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학교에 오게 된 것 같아요. 대학에서 지내다 보니 교육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돼요. 학생들과 호흡하는 순간들이 언제나 보람차요. 저도 국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보다 더 빛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세상의 중심에선 음악가의 내일

작곡가로서 갖춰야 할 제일의 소양은 무엇일까. 이정호 교수는 조금의 고민 없이 ‘인성’이라고 말했다. 음악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 마음을 담아 이어가는 과정이다. 혼자서 연주하는 무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흡이 중요한 장르다. 언제나 무대에 함께 하는 타인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특히 작곡하는 학생들은 주로 혼자서 작업하다 보니까 대인관계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작곡을 하면 할수록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팀 활동을 장려하는 편이에요. 매년 봄에 창작음악연주회인 ‘춘계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마음이 맞는 학생들끼리 모여 오디션을 통해 무대에 오르는 과정이 있어요. 이번 해에도 6개의 팀이 학생들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졌어요. 이럴 때 교육자로서는 흐뭇한 거죠. 요즘은 학생들의 성장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이 교수의 꿈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언제나처럼 자신만의 곡을 꾸준히 쓰는 과정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곡들을 완성하는 미래로 향하는 길일 것이라고 말했으니까. 끝으로 그는 국악 작곡가들이 분투하며 세상에 선보이는 창작 작품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국악이 품은 미래지향적인 작업들에 언제나 그의 손길이 더해져있기를 함께 바라며,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들에 보다 다정히 귀 울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느 음악에 나를 위한 악보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므로. 사진제공_이정호 교수

profile

영남대 국악과 (국악작곡 전공) 졸업
프란츠 슈베르트음악대학 작곡 석사 최우수 졸업
온나라국악경연대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등 수상
제 9회, 13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작곡가 선정
국립국악원 공로 표창
J국악오케스트라 예술감독
한국정악원 이사
부산광역시 문화재 전문위원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

주요작품
· 합창과 진도씻김굿, 국악관현악을 위한 <진혼>
· 국악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제1번 <별>
· 수룡음 계락 주제에 의한 국악관현악 <폭포수 아래>
· 김동진류 대금산조협주곡 <부활> 외 300여편 작편곡 작품

음반
· 이정호 국악작곡 1집 앨범
· 이정호 국악작곡 2집 앨범 <별한>
· 이정호 국악작곡 싱글앨범 외 다수 음반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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