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도금산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다!
끝나지 않은 ‘꾼’의 이야기
배명직 기양금속공업(주) 대표이사·표면처리 분야 대한민국 명장|경기과학기술대 청정환경시스템과 겸임교수 그저 말뿐인 ‘고수’가 아니다. 기술 장인을 일컫는 ‘명장’이란 호칭을 얻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처음과 끝이 같은 도전의 정신은 그 자체로 한편의 서사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기술 인생을 걸어 온 끝에 어느덧 대한민국 도금산업을 좌지우지하는 ‘전설’이 된 인물, 바로 대한민국 표면처리 분야의 명장, 배명직 기양금속공업(주) 대표의 이야기다. 스스로가 ‘기질’을 가진 ‘꾼’이었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 ‘도금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집념으로 점철된 삶의 발자취와 끝나지 않은 명장의 갈망을 따라가 보았다.
취재·글_ 오미경 기자
배명직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내에 위치한 기양금속공업(주). 오전 일찍 잡아둔 약속이었지만 배 대표는 벌써 한 차례 업무와 관련한 다른 미팅을 마친 모양이었다. 40년 가까이 늘 시간을 쪼개 쓰며 살아왔다는 그의 말을 그렇게 실감했다.
● 도금 인생의 시작
짙은 눈썹에 선 굵은 이목구비, 날카로운 눈빛까지 더해져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배명직 대표는 누가 보아도 화려한 삶을 살아왔을 것만 같은 첫인상이다. 하지만 배 대표는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험난한 역경을 지나왔노라며 담담히 말문을 열었다.
배명직 대표의 도금 인생이 시작된 건 역설적이게도 방황했던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경북 예천의 작은 벽촌 마을이 고향인 그는 빨리 사회인이 되어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영주종고 화공과에 입학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고백하건대, 꿈은커녕 이렇다 할 삶의 희망도 찾지 못했을 만큼 당시 배 대표는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 신분을 벗어난 일만 일삼던 그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온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문득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철없는 행동도 한 마디 꾸지람 없이 지켜봐 주셨던 아버지와 선생님의 조언을 생각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격증 하나는 취득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친구들에게도 숨기고 밤샘으로 공부해 5개월 만에 ‘화학분석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그것이 저의 도금인생을 있게 한 시작점입니다.”
스스로 맘먹은 노력이 결실을 이루자 삶에 대한 그의 의지는 조금씩 강해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의 아연도금 공장에 첫 입사한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며 일했고,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의 공장을 전전하던 때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많았지만 속으로 삼켜가며 앞날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군 입대 영장을 받게 된 배 대표는 자격증을 가지고 방위산업체의 병역특례 혜택을 받으려 상경,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방위산업체인 삼우금속공업(주)에 입사해 도금 인생의 기틀을 닦게 된다.
● 시련, 그래도 쓰러지지 않는다
삼우금속공업(주) 도금공장에 입사할 당시부터 배 대표의 목표는 뚜렷했다. ‘도금공장의 사장이 되겠다’는 다부진 일념으로 첫 근무지를 폐수처리장에서 맞이한 그는 힘든 업무를 성실하고 꼼꼼하게 이행하며 신뢰를 쌓았다. 덕분에 그는 입사 1년 만에 간부로 승진해 생산부, 총무부, 실험실, 영업, 구매업무 등 전 부서를 옮겨가며 회사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하지만 경영 악화로 공장이 부도사태에 이르면서 배 대표는 예기치 못한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아예 내가 회사를 차려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당시 서울사무소를 책임관리 하셨던 방효철 소장님이 법정 관리인으로 선임되어 그 분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고, 가동이 중단된 부천공장의 한쪽 구석에 30평 정도의 공간을 얻게 되었죠. 그래서 ‘명일금속’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버지가 마련해준 종잣돈 200만원으로 창업을 했습니다.”
겨우 회사를 차리긴 했지만 그야말로 맨손으로 시작된 살림이었기에 운영은 쉽지 않았다. 장비나 기계를 마련할 자금은커녕 밥값을 충당하기도 어려워 동료들과 공장 구석에서 직접 밥을 지어먹어 가며 하나씩 살림을 늘려갔다. 그렇게 3개월 쯤 했을 무렵, 나머지 병역특례기간을 채우기 위해 삼우금속공업(주) 창원 공장에 기사로 내려가게 된 그는 주말도 없이 서울과 창원을 오가며 일에만 몰두하는 고된 생활을 해야 했다. 다행히 창원에서의 근무는 그가 국방품질규격관리 규정을 모두 외울 정도로 업무의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배 대표는 이를 기반으로 삼원금속(주)이라는 법인을 설립해 명일금속을 합병, 급격한 사업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삼원금속(주)을 이끌면서 표면 상 동업관계를 이어오던 배 대표는 보증기금에 보증을 선 일이 화근이 되어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생활마저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당시 그는 처절한 심정이었다고. 하지만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문제에 맞선 덕분일까. 배 대표는 삼우금속공업(주) 창원공장 사장님의 도움에 힘입어 기적처럼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후 비로소 ‘기양금속’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법인으로 전환하며 본격적인 사업의 도약기를 맞이하기에 이른다.
“어릴 적부터 지기 싫어했던 기질과 한 번 세운 목표는 해내고야 마는 의지는 사회에서 위기에 직면할 때에도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불어 방위산업체 근무기간 동안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신 방효철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나의 패기와 성실함을 믿어주신 그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 끝없는 도전, 표면처리 분야 대한민국 ‘명장’을 만들다
끊어질 듯 이어진 시련을 딛고 선 회사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국방품질검사소를 통해 서울 및 경인지역 방위산업체의 일을 대부분은 도맡아 했을 정도로 입지가 굳어졌다. 그즈음 배 대표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또 한 번의 자기 도전을 실행에 옮겼다.
“검사소의 많은 박사 출신 연구진들을 보며 내실 있게 사업을 해나가려면 이론에 취약한 점을 보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35살에 인천재능대학의 표면처리과에 입학해 특수도금기능사, 전기도금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내친김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신소재학과에 편입해 공부하면서 기능장 자격에 도전했지요. 세 번의 시도 끝에 합격했네요.(웃음)”
자격의 무게만큼이나 과정도 어려웠지만 의지를 불태운 그는 대한민국에서 CEO로서 기능장에 오른 최초의 주인공이 되었고, 동(同)대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뿐 아니다. 기술인으로서 성장할수록 꿈도 함께 키워간 배 대표는 2007년, 기술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인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해 표면처리 분야의 대한민국 명장이 되는 영예를 안았고, ‘기능한국인’의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끝을 보고야 마는 배명직 대표의 집념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처럼 기술과 함께 이론까지 섭렵하면서 그는 8년 째 경기과학기술대학교의 겸임교수로서 후학 양성을 해오고 있으며, 표면처리 분야를 이해하는 지침서 격인 ‘도금·표면공학Ⅰ,Ⅱ’를 펴내 도금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역할에도 기여했다.
그와 맞물려 통신 및 방위 산업 분야의 도금산업 발전에 주력해 온 기양금속공업(주)도 눈부신 전진을 거듭한다. 인체에 무해한 ‘크롬 프리 도금법’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업계에서도 환경을 생각한 기술 선진화에 특히 앞장서온 기양금속공업(주)은 방산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ISO9001 외에 INNO-BIZ 기술 혁신형 기업에도 선정되었다. 지금까지 이룬 특허 기술만 9건, 현재 3~4개의 특허도 출원 중에 있다. 또한 기술을 토대로 연 매출 70억 원에 이르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한 그들은 1997년 품질경영시스템 인증, 2004년 기술혁신 중소기업 인증, 2007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대통령 산업포장 등 국가로부터 다수의 인증을 받으며 강소기업의 면모를 확인시켜 주었다. 현재는 우주항공 및 위성, 통신 등의 분야에서도 핵심부품 표면처리 전문업체로 활약 중이다. 사실상 기양금속공업(주)을 빼놓고 대한민국 도금산업 분야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황금 칼’에 담아낸 도금산업 발전의 사명
그러나 정상의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배명직 대표의 열정은 좀처럼 마르질 않았다. 수십 년 간 매일 새벽 1~2시간 씩 산책을 하며 아이디어를 정리하곤 했다는 그답게, 배 대표는 표면처리 분야의 명장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보리라는 다짐으로까지 생각을 확장시켰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황금 칼’이다.
우연히 모 호텔의 주방장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얻은 배 대표는 5년 간 직접 발품을 팔아 연구한 끝에 2009년, 자신의 이름 약자를 따서 만든 ‘BMJ 황금 칼’을 선보이며 업계에 또 한 번의 파장을 일으켰다. ‘BMJ 황금 칼’은 세계 최초로 칼날에 황금을 도금하는 기술로 만들어 칼이 녹스는 문제를 막았고, 마모 및 항균처리를 통해 고 퀄리티를 구현, 이미 많은 유명 쉐프들이 선호하고 있다. 이외에도 배 대표는 황금 수저, 황금 식기 세트 등으로 품목을 넓혀 선물문화의 다양화를 꾀했다. 또 각종 영화 및 연예 시상식에서 볼 수 있는 트로피들 역시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BMJ 황금 칼’은 현재 전국 9개 직영매장을 통해 선보이고 있으며, 미국지사를 중심으로 한 수출과 홈쇼핑 등을 통해서도 시장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하여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금껏 자신을 채찍질하며 끊임없이 산업현장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배명직 대표. 그의 남은 꿈은 이제 더 멀리 ‘사회’로 향하고 있다. 특히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짬을 내 대안학교 무료 강의와 마이스터고인 합덕제철고등학교에서 표면처리 특화반 교육을 하며 산업현장과 대학을 잇는 교두보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대한민국 뿌리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바람에서다.
“도금·금형 등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뿌리산업은 국가경제의 근간이 되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산업 명맥을 이어나갈 젊은 인재들이 없어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직도 이러한 뿌리산업을 천대시하는 분위기와 공해유발 산업이라 오해하는 등 잘못된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도금산업을 친환경 무공해 청정산업으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해왔고, 이제 업계도 바뀌었습니다. 도금산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더불어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정책적 노력과 인재 육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강구되어야 해요.” 단호한 얘기 끝에 한 동안 침묵을 잇는 그에게서 간절함이 전해온다.

“도금산업은 고도의 표면처리 공학이자 고부가가치 부품소재 핵심 산업이다. 나는 ‘황금 칼’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도금산업의 가치를 알릴 것이다. 그것이 한 자루 ‘황금 칼’에 담은 나의 사명이다.”
방황하던 치기어린 청춘이 사라진 자리엔 도금업을 천직으로 알고 그 자체를 즐기며 살아온 시대의 명장이 서 있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지만 ‘좋아서 하는 일’에 있어 이는 그저 좋은 거름이 될 뿐이었다. 사명을 품은 그의 눈빛이 경외감마저 들게 한다. 명장 배명직 대표가 있는 한 대한민국 도금산업의 내일엔 결코 희망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rofile.
現 기양금속공업(주) 대표이사
비엠제이 대표이사
●경력
한국 예술 문화 명인협회 초대이사장
대한민국명장(표면처리)
대한민국기능한국인 8호 업계1호
금속공예(금속표면처리부문) 명인 (한국예술총연합회)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업계1호
국가기술자격 심의위원
경기과기대 청정환경시스템과 겸임교수
경기융합교류회 감사
(사)한국도금공업협동조합 부이사장(환경대책위 위원장) 外
●상장 및 포상
(2007) 제2회 산업단지혁신클러스터의날 (국무총리표창)
(산업혁신클러스터진흥.발전유공자포상)
(2007) 생산기반기술경기대회 기술의 탑(대상) (국무총리)
(2007) 대한민국 명장선정(금속표면처리 제1호) (노동부장관)
(2010) 뿌리산업육성 공로패 (지경부장관)
(2010) 중소기업기술혁신표창 (지경부장관)
(2012) 대한민국산업 포장증 (직업능력개발 기여 공로_대통령)
(2016) 중등직업교육발전 기여 표창 (교육부총리) 外
●기타 산업재산권 특허 및 품질 인증, 위촉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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