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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7

셰프(chef)를 ‘천직(天職)’이라 말하는 중국요리의 대가를 만나다

이선진 기자ㅣnews@weeklypeop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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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chef)를 ‘천직(天職)’이라 말하는 중국요리의 대가를 만나다 | 위클리피플 인물지식가이드저널
 

셰프(chef)를 ‘천직(天職)’이라 말하는 중국요리의 대가를 만나다

여경래 홍보각 오너셰프 |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 |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

국제 중국요리 마스터 셰프로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여경래 셰프. 오늘도 그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홍보각’ 오너셰프와 요리연구가, 교수,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이자 세계중국요리연합회 국제심사위원, 방송활동 등 다채로운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먹방(음식 먹는 방송)’에 이어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뜨면서 더불어 유명세를 치르게 된 측면도 있지만, 사실 업계에서는 이전부터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여경래’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듯, 일평생 중국요리에서 오롯이 열정적 삶을 꽃피워오고 있었던 그. <위클리피플>은 유쾌하고 인간미(美) 넘치는 여경래 셰프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 글_이선진 기자

서울 중구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내에 위치한 중식당 ‘홍보각(紅寶閣)’. 중국요리의 대가 여경래 셰프를 만나고자 기자는 ‘홍보각’을 찾았다. 문 앞까지 나와 호탕한 웃음으로 시원스레 반기는 여경래 셰프를 보니 기자의 마음도 환해진다. 이내 자리를 잡고 몰입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행된 인터뷰. 진중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리드해준 ‘매력남’과 우리의 뜻 깊은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운명을 개척하며 스스로 나를 만들어왔다

15여 년 전. 인터넷 다음(daum) 카페의 붐이 일던 시절. 중국요리와 관련해 가장 만나고 싶은 중식요리사 1위로 등극한 인물이 바로 ‘여경래 셰프’였다. 전국 각 대학 ‘조리학과’에서 특강 요청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하여 전국 방방곡곡 대학을 누비며 다닌 지도 20년이 넘었다. 2008년 세계중국요리연합회 국제심사위원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여경래 셰프.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중국요리협회 부회장직까지 맡게 된 그에게는 의외의 굴곡진 삶과 힘든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대만 국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경래 셰프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정체성에 혼돈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나이 6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그는 더욱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로 변해갔다. 그가 중국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졸업 후 기술을 배우라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서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요리를 하던 초창기 시절, 일주일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한 집안을 탓할 수만도 없었고,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배가 아팠는지, 부러웠었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라며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중학생 때, 수원에서 서울로 통학을 하면서 ‘신문’을 보기 시작했던 여경래 셰프는 사설이나 논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와는 다른, 시대적 상황이 신문 안의 글들로 표출되는 것들이 흥미로웠다고. 여경래 셰프는 꿈이 있었다. 그림 혹은 예술과 관련한 일들을 어렴풋이 꿈꿨다.

“19, 20살 정도가 되었을 때, 문득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악의 구렁텅이와 같은 곳에서 나를 끄집어내줄, 내 손을 잡고 인도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세상이 나를 향해 맞춰주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에 맞춰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처음 들던 순간이었다. 그날부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천직’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여경래 셰프는 ‘내 안에 있는 나를 끄집어 내자’고 다짐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대인관계나 소통이 어렵다고 판단했기에 의도적인 변화를 실천했다. 그는 처음으로 강단에 올랐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요리학원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다지 두려움이 없었다. 후에 들어보니, 음식을 만드는 설명을 내가 조곤조곤 했더란다. 이를 계기로 기왕 강의를 시작할 바에야 재미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TV를 보았는데, 어느 코미디언이 너무나 웃기는 이야기를 본인은 웃지도 않으면서 태연하게 하더라. 이를 보며 유머를 연습하고 강의에 내공을 쌓으면서 자신감을 키워갔다.”

40여 년간 업(業)에 몸담으며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안경을 벗고 요리를 하면서 생긴 미간에는 주름이 깊어져있었고 험악하게 굳어진 인상이 눈에 들어온 것. ‘어떻게 이런 얼굴로 살았나’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웃는 연습을 시작했다. 자기개조의 경험이었다.

“세상은 자기가 살기 나름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모든 것이 부정적인 요소에 의해서 지배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면 그 반대다. 100% 중에 내가 가지지 못한 99%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단 1%라도 내가 가진 것을 바라보며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 성공자의 삶이 아닐까. 나는 스스로 내 운명을 개척하며 나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 내 삶의 원동력은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

여경래 셰프가 요리를 하는 모습은 가히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일하는 동선 안에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지휘관의 모습이다. 불 앞에서 야채를 볶으면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주변 촉각을 세우며 온 오감을 열어 요리하는 것. 그의 손놀림은 칼질 속도보다 빠르다. 그러나 한결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묻어나있다. 1부터 100까지 자신의 손을 직접 거쳐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예전의 ‘여경래’였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일선에서 떨어져 넓은 시야를 보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총지배인 ‘책임자’가 없다 해서 차이가 난다면 그곳은 무능한 사업장이다. 직접 요리를 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 이제는 입으로도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며 그는 일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여경래 셰프는 넥타이를 매는 등 항상 옷을 갖춰 입고 웃으며 손님을 맞이한다. 주방장 스페셜 메뉴 추천, 맛있게 드시는 방법을 소개해주는 것에서 나아가, 발길을 향해준 손님들과 해를 거듭하며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것.

그는 직원들에게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미숙해서 실수를 할 때 싫은 소리를 들을수록 한 가지씩 배우게 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쓴소리를 자기 개발의 발판으로 삼을 줄 아는 마음과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스스로 나를 만들어온 과정의 느낌들’을 전하는 것뿐이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20대 때 조리사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30대 초반에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아들 둘을 키워낸 여경래 셰프는 젊은 나이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탄탄대로 호텔 주방장 자리에 오르면 그 위치에도 분명 한계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요리를 하고 배달을 배우면서 함께 꿈을 키워나갔던 동료들은 현재 서울 시내 웬만한 총주방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한다.

“소중한 인맥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꿔온 긍정의 측면들은 내가 살아가는 곳곳에 산재된 ‘즐거움’이다. 지금 키우고 있는 후배 셰프, 꿈나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로 긍정의 기(氣)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에너지를 받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여경래 셰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안팎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웃음 짓는다. 여경래 셰프는 분야에서 앞서가는 안목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구상한 바를 몸소 일궈왔다. 일례를 들자면, 전국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경연대회이다. 9년 전 4개의 대학에서 참가를 알리며 시작된 이 대회는 현재 51개 대학이 참여하는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세계중국요리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리라 10년 전부터 꿈꿔온 목표가 눈앞에 고지를 앞두고 있는 것.

그의 명함을 보면 ‘이금기(李錦記) 주사고문(廚師顧問)’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홍콩에 ‘이금기’라는 명성 높은 기업에서 전 세계 최고 중에 best 셰프를 고문으로 영입한다는 사실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는데, 여경래 셰프가 이곳의 조리 고문을 맡은 지도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는 한국 출신으로서 자부심이요,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어림 짐작해볼 수 있다.

세계중국요리연합회에는 자격증 있는 조리사 회원이 900만 명 정도이고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은 400만 명 정도이며, 그중 조리명인이 416명 있다. 국제중국요리명인 교류협회에서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인 여경래 셰프는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작년에는 EBS TV "세계테마기행" 방송 촬영차 중국 운남성에 한 달 가량 다녀왔는데,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이 몇 년간 방영해온 세계테마기행 전체를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변화를 즐기면서 많은 것을 도전하고 성취해왔다. “나의 이력상 대부분은 시의 적절한 때 귀인을 만남에 따라 이루게 된 부분들이다. 때가 되면 만날 것이요. 잠재된 능력을 꾸준히 계발하다가 어느 시점의 만남으로 인해, 시너지화 할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온다”고 말하는 여 셰프. 자신이 추구하는 부분들을 꾸준히 해나가면서 이루고, 계속 또 변해가는 것이 ‘꿈’이기에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가 꾸는 꿈에는 한계랄 것이 없어 보였다. 꿈 너머 꿈 뒤에 있었던 그의 커다란 존재, 산처럼 나무처럼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여경래 셰프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리뷰]

Profile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
국제 중국요리 마스터셰프
중화인민공화국 요리명인
중국요리 국제심사위원
세계중국요리 명인 집행위원
세계중국요리 명인교류협회 부주석
한국외식산업협회 부회장
한성화교소학교 이사
한성화교협회 부회장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중국요리 강의
인천문예 푸드스타일리스트 및 코디네이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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