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후 연수늘밝은안과 대표원장. 사진제공_연수늘밝은안과
지역사회의 눈 건강 지킴이로서 의술을 펼치다
[글로벌 메디컬 리더 | 안과부문]
김선후 연수늘밝은안과 대표원장
인류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의성과 안락함을 누려왔지만, 그 이득에는 필연적으로 대가가 따랐다. 대형 브라운관, 스마트 기능이 탑재된 모니터, 침대에 누워서도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거치대까지, 수많은 문명의 이기를 벗 삼아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눈 건강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현대사회에 눈 건강이 필수적인 이 시점에서, 치열한 고민 끝에 답을 찾아낸 이가 있었다. 연수늘밝은안과 김선후 대표원장은 2009년 라식에 비해 안구건조증의 부작용이 적은 라섹과 성형외과에서 주로 사용하던 PRP(자가혈치료술)을 접목한 PRP 라섹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통증도 완화되는 이 PRP 라섹은 무엇보다 안구건조증에 효과적이어서 이 시대에 맞춤인 시력 교정술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안과학계 선두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고민하는 김 원장의 연수늘밝은안과의 이력을 보면, 2003년 개원 이후 지금까지 ‘도입’이라는 문구가 끊이지 않고 들어가 있다. 늘 새로운 기술과 장비, 시스템을 연구하고 개발 중인 것이다. 김선후 대표원장을 만나 그의 발자취와 의료 신념, 진료 철학을 들어보았다.
취재·글_이선진 기자, 고수경 기자
꾸준히 성장해가는 연수늘밝은안과
핵심은 환자와의 신뢰 관계 형성
연수늘밝은안과는 2003년, 인천 연수구에서 첫 시작을 맞았다. 당시 라식, 백내장, 렌즈삽입술, 드림렌즈를 위주로 다루었던 김 원장은 더 쾌적한 환경의 동춘동의 스퀘어 건물로 터를 옮겨 병원을 확장하고, 4년 전에 추가로 한 번 더 확장하며 인테리어를 공사하고 장비도 보강했다. 이 과정에서 연수늘밝은안과를 가장 크게 바꿔준 점은 새로운 원장 의사의 영입이었다. 가천대 길병원 안과에서 15년 재직한 교수 출신 지미정 원장은 성형안과 파트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임상 조교수 출신 추헌구 원장은 망막 파트를 맡았다. 그들과 함께 연수늘밝은안과를 운영하는 김 원장은 두 명의 원장 의사를 추가로 영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가 원장 의사를 영입할 때 능력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바로 의사로서의 마인드다. 환자를 대할 때 어떤 기술로 임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지. 그것은 김 원장 자신의 진료 철학으로도 통한다.
“참된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마인드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병은 한계가 있는데, 이 신뢰 관계만 잘 형성된다면 자연 치유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가 잘 봐주고 있다는 믿음이 환자에게 생기면, 그런 의사와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 거죠. 저와 이야기하고 나면 마음도 편해지고 증상도 나아진 것 같다고 좋아하시면서 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안과는 시력교정부터 노안 및 백내장, 망막, 녹내장, 안성형까지 진료과목이 여러 파트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김 원장이 단독으로 진료를 보았던 개원 초기에는 비교적 깊이 있는 치료가 어렵다는 점이 있었다. 두 명의 원장과 함께하는 지금은 파트 별로 과목을 나누어서 진료를 보며 환자들이 대학병원에서 제대로 듣지 못 했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게 좋은 점이라고 김 원장은 말한다. 더 정밀한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대학병원에 가야 하지만, 그곳에서는 환자들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진료받기가 어렵다는 점이 김 원장의 마음에 늘 걸렸던 것이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편임에도 진료를 볼 때만큼은 말이 많아진다는 김 원장은 이제 마음껏 환자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나누며 진료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김 원장의 진료를 후배 의료인들과 교수 출신의 원장 의사까지도 참관하며 본받는 중인데, 뜻밖에도 김 원장은 이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다.
“제 진료방식의 장점은 환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진료의 질이 높아진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죠. 후배들도 그 부분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주는 부분이 고맙고요. 단점은 그만큼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환자들도 오래 기다리게 되고, 직원들도 고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진료의 질도 높이고 대기 시간도 줄일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의료현실이 어렵죠. 이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서 평생 노력해 왔는데도 쉽지 않네요. 그래도 매달 한 번씩 실장 회의를 하면서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최선을 다하며
장비는 최고를 택하다
김 원장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PRP 라섹 역시 환자와의 상담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각종 전자 화면을 들여다보며 사는 현대인들 가운데 안구건조증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던 때였다. 안구건조증에 취약한 라식이 주된 시력 교정술이었던 당시 김 원장이 운영하던 라식 부작용 클리닉에 전국에서 상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많은 문의에 늘 답변을 달아주던 김 원장은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은 것처럼 고민했다. 안구건조증 환자는 앞으로 점점 많아질 텐데, 안구건조증에 취약하지 않고 회복도 빠른 시력 교정술은 없을까. 밤낮없이 다방면으로 연구하다가 마침내 성형외과 분야까지 파고들었다. 성형외과에서 자주 사용하는 PRP를 안과에 접목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김 원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안구건조증과 회복력, 두 가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PRP 라섹을 시술해오고 있다. 한편 그는 연구 욕심만 남다른 게 아니었다. 백내장 수술은 의사의 능력만큼이나 장비가 중요한 분야여서 수술 현미경과 백내장 수술 장비를 세계에서 주목하는 고가의 장비로 갖추었다. 백내장뿐만 아니라, 김 원장의 장비 욕심은 진료과목을 막론하고 안과학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안과는 비보험 진료과목이 많은 분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병원이 상업적인 부분, 라식, 라섹이나 노안 백내장 같은 비보험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되죠. 저는 저희 진료에 필요한 장비, 진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장비에 투자하고 있어요. 백내장 초음파 장비 같은 고가의 장비도 갖췄고, 망막 수술 장비도 꾸준히 확보하고 있고요. 2000년대 초반에 유럽에 갔을 때는 노안 수술에 관심이 있어서 장비업체 사장과 매일 밤 미팅을 했어요. 결국 유럽학회까지 가서 라식 수술을 처음 개발한 창시자 팔리카라스 박사, 알리오 박사 등을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미팅하고 토론하면서 노하우도 공유한 끝에 노안 수술 장비를 들여온 거죠. 나름 개인병원에서는 탑클래스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장비업체의 내로라 하는 현직자들도 가족과 지인을 믿고 보내실 정도죠.”

환자와 직원 모두가 행복한 병원
사람을 남기며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백내장 진료 경력 27년 차, 라식 경력도 20년이 넘은 김 원장은 어느덧 2대에 걸쳐 수술한 경력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초창기에 김 원장에게 라식과 라섹 수술을 받았던 환자가 십 년도 훌쩍 지나서 자녀의 수술을 맡기러 오는 것이다. 손자까지 수술을 해줘야 한다며 3대 환자를 예약하는 모습에 그때까지 일하라는 거냐고 웃지만 김 원장은 사실 이런 일이 가장 뿌듯하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본인의 눈에 이어서 자식의 눈을 맡긴다는 건 의사를 전적으로 믿어야 가능한 일이다. 드림렌즈 역시 오랫동안 진료하다 보니 시력 관리를 잘해서 성인이 된 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편지를 주고 가기도 한다.
이렇게 항상 보람을 느끼는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건 김 원장이 철저한 의료 신념에 따라 진료를 봐온 덕이다.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것.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최고가 되어서 환자들의 인정을 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안에 김 원장의 신념이 하나 더 있다. 김 원장에게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매출 1위나 학계에서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닌, 환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가장 좋은 병원은 환자들이 인정해주는 병원입니다. 환자가 다녀와서 진료를 인정하고, 지인들에게 소개해주는, 그런 병원으로 만들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일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최고의 병원 마케팅은 직접 방문한 환자들의 소개라고 생각해요. 진료는 환자와 같이 소통하면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병원의 안정성을 가장 오래, 가장 확실하게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이 마음가짐으로 꾸준하게 연수구 환자분들의 건강을 지키면서 좋은 병원으로 자리 잡는 게 목표예요. 이제 제가 진료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후 제가 은퇴하면 후배 의료인들이 그다음 10년, 20년, 50년을 이어서 이끌고 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서 후배들에게 제가 해온 일들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어요. 천천히 후학을 키워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김 원장은 단순히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일을 넘어서 이 연수구의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그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듯하다. 국내 최초 기술을 도입하고 장비도 최고급으로 갖추는 등 아낌없이 투자해 키운 연수늘밝은안과를 김 원장은 자신의 병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의 은퇴 이후에도 연수늘밝은안과가 지역사회에 기여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그는 오늘날에도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그가 쌓아 올리는 인적자산은 후배 의료인뿐만이 아니다. 15년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많은 직원에게 존경을 받으며 끝까지 모시고 싶은 원장님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이나 직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덕분이다.
“환자가 마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병원이 가장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되려면 직원이 병원에서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직원보다는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제가 혼자 진료를 볼 때부터 저와 함께 두 번의 확장을 거쳐왔던 이 병원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죠. 짐도 같이 나르며 짜장면도 먹고, 또 남아서 정리했던 모든 과정을 함께해온 가족입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하게 일해야 환자분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환자분들도 편안하게 진료받으시는 환경도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장비에 투자를 정말 많이 했고, 앞으로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비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우리 직원들이 더 쾌적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인적 투자를 계속 늘려갈 생각입니다.”

공대생에서 안과 의사까지
어머니의 유언으로 새기는 초심
마음속엔 환자와 직원 생각, 욕심이라곤 오직 연구와 진료와 수술 장비뿐인 듯한 김 원장. 왠지 그는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흔들림 없이 의료인의 길만 걸어왔을 것 같다. 그런 김 원장에게 뜻밖의 과거가 있었다. 의대 진학 전에 공대에 다니고 있었던 것. 공대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는지, <위클리피플>은 김 원장의 유년 시절부터 들어보며 한 소년이 안과 의사가 되기까지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았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제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고생을 하고 계셨어요. 몇 년을 앓으시다가, 제가 중학교 2학년 됐을 때 어머니가 의식을 못 찾으시고 응급실에 실려가셨죠. 당시에 병원에서는 진단을 못 내리고 원인도 못 찾는다면서 돌아가실 거라고 했는데, 마침 그때 계시던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이 저희 외삼촌의 지인이셨어요. 그 선생님이 어머니를 보시고 뇌종양 같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서 CT를 찍고 뇌종양을 진단받았어요. 수술하시고 완치됐는데 3년에 한 번꼴로 계속 재발하셨고요. 그래서 거의 둘이서 자라다시피 한 저랑 남동생이 좀 애틋한 사이인데, 형으로서, 장남으로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집안에 의사가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 막연한 꿈 말이죠. 그래서 결국은 공대를 다니다가 원래 제 꿈을 접고 다시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진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돌아가실 위기에 처해 있던 어머니가 한 명의 의사에 의해 생명의 불씨를 되살렸던 일은 김 원장의 삶을 바꿔놓았다. 공대에서 의대로, 인생의 커다란 선택을 한 김 원장은 의대에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했다. 신경외과를 지망하려 했던 그가 수많은 고민 끝에 완전히 새로운 분야인 안과를 택한 것이다. 당시 학과의 분위기와 본인의 적성, 향후 경쟁력 등 다수 요소를 따져본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마침내 인천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안과 의사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새로운 선택의 연속이었다. 거센 풍랑을 견디고 병원을 개원한 2003년도는 김 원장에게 기쁨의 해임과 동시에 김 원장에게 인생의 지표를 세워준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의 해였다.
“어머니가 의식이 없으시다가 한 번 깨어나신 적이 있어요. 그때 저에게 좋은 의사가 되라고 하셨죠. 그게 마지막 대화였고, 유언이 됐어요. 개원 초창기에 수술이 잡혀 있어서 마치고 가보니 돌아가신 거예요.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거죠. 지금도 어머니의 그 말씀을 기억하고 항상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합니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
진심을 다할 수 있는 분야 찾아야
어머니로 인해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김 원장은 의사로서의 초심 또한 어머니의 말씀으로 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 원장은 이제 막 그와 같은 길로 들어선 후배 의료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위클리피플>은 어느덧 인천 연수구 안과학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아가는 김 원장에게 이십여 년 전의 그처럼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후배 의료인들을 위한 조언을 구해봤다.
“저도 초창기에는 수술이 익숙하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죠. 그때만 해도 유튜브 같은 매체도 없었고, 수술 영상을 보고 공부하려면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서 봐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계셨던 분들의 수술을 녹화한 테이프를 아는 분들에게 빌렸죠. 쫓아다니면서 부탁해서 빌려다가 수만 번은 봤을 거예요. 비디오를 보면서는 머릿속으로 내가 수술하는 것처럼 리마인드해보고요. 지금은 수술 경력이 25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영상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유튜브가 발달되어 있으니 영상을 찾아서 보죠. 나는 이렇게 하는 수술을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내가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면서 내가 수술하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자기 분야에서 원하는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해요. 이 정도면 됐다, 하고 안주하면 도태되는 거고요. 그럼 좋은 의사가 될 수 없겠죠. 저는 수술 전날에는 간혹 모임이 있더라도 술을 잘 안 마십니다. 주변 사람이 볼 때는 평상시와 똑같다고 하지만, 저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알 수 있거든요. 수술 전날에는 주로 수술에 신경을 쓰고, 모임은 토요일에 갖는 편이죠.”
이제 곧 30년 차가 다 되어가는 경력에도 공부를 놓지 않는 김 원장. 환자들과 안과학계에 진심 어린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는 요즘 진정으로 원하는 파트를 선택하는 의사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소신의 목소리를 냈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의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파트를 정할 때 기준을 잘 세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평생을 해야 할 일이니 진심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며 과를 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었다.
“저는 그동안 직원들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왔어요. 이곳에서 직원들 보고, 가족들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찾았죠. 그러니 안과를 선택한 결정에 후회하지 않아요. 환자분들이 치료받고 행복해하시는 모습 보면 뿌듯하고, 내가 잘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배 의료인들도 상업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이 이룬 것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지키는 눈 건강
사소하지만 꾸준한 습관 중요해
PRP 라섹 도입부터 최고급 퀄리티의 장비 보유까지, 우리나라 안과학계를 선도하는 김 원장도 최고의 치료는 예방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영유아 시기부터 전자 화면을 보게 되고 이후로도 평생 각종 전자 화면을 볼 일이 점점 증가할 일만 남은 현대에는 평소에 눈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위클리피플>은 일상 속에서 눈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습관에 대해 김 원장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첫 번째로는, 의식적으로 눈에 휴식을 줘야 합니다. 장시간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게 되면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눈이 건조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보고 있든 간에 중간에 눈이 쉴 수 있게 해주어야 하죠. 미국검안학회(American Optometric Association)가 제안하는 20-20-20 규칙이 한 예인데, 20분간을 주시해서 무언가를 본다면 20초는 쉬어주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20피트(6m) 정도 먼 곳을 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외선을 피하는 것입니다. 자외선에 눈이 장시간 노출되면 눈 건조증과 백내장, 황반변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햇빛이 강한 날에는 반드시 UVA, UVB를 차단할 수 있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선글라스를 착용하기가 어렵다면 대신 양산이나 모자를 착용해서 눈이 자외선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눈 건강을 위해서 영양제 혹은 영양이 많은 식품을 챙겨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비타민 A, 비타민C, 안토시아닌, 루테인, 지아잔틴, 오메가3 등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면 눈 건강에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눈 건강 지킴이로서
마지막까지 좋은 의사로 남을 것
밤낮으로 연구한 기술을 도입하고, 국내외 최고 수준의 장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도 이 병원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사가 얼마나 더 있을까. 누구든 제 이득부터 챙기기 바쁜 시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그의 헌신은 오로지 환자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눈은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일컬어지다 보니 제대로 된 진료가 절실했던 환자들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 원장에게 치료받은 환자는 거주지를 제주로 옮기고도 지금까지 매년 진료를 보러 오기도 하고, 자신의 자식과 손자까지 데려와 맡기는 환자가 다수다. 이렇게 20년이 넘도록 쌓여온 환자들이 김 원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김 원장은 그런 환자들에게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 더욱 성심성의껏 진료를 보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위클리피플>은 김 원장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향후 목표에 관한 꿈을 들어봤다.
“내년부터는 녹내장 파트와 각막 파트의 원장님을 모시고 5인의 분야별 진료 체제를 꾸려갈 예정입니다. 장비와 인력에도 계속 투자할 생각이고요. 앞으로도 눈앞의 상업적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하고 진정성 있게 이 지역사회의 눈 건강 지킴이가 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병원을 만들고, 이 병원에 와주시는 환자분들에게 마지막까지 좋은 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좋은 의사가 되는 것.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은 아마 많은 의사에게는 가장 어렵고도 이상적인 지향점이 아닐까. 김 원장은 지치지 않는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사욕을 돌보지 않는 투자로, 늘 마음을 다하는 진료로 이 높은 지향점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김 원장이 돌보아온 환자들의 건강하고 튼튼한 눈이 그러한 김 원장의 모든 걸음을 함께 지켜봐 줄 것이다. <위클리피플>은 연수구 지역사회의 눈 건강을 지키는 데 앞장서는 김 원장이 이미 좋은 의사라고 믿으며, 보다 더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하여 눈과 마음이 밝아질 수 있도록 연수늘밝은안과 김선후 대표원장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사진제공_연수늘밝은안과
profile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가천의대 길병원 외래교수
가천의대 대학원 졸업
학술활동
대한안과학회 정회원
한국백내장 굴절학회 정회원
미국백내장 굴절학회(ASCRS)
정회원유럽백내장 굴절학회(ESCRS) 정회원
한국콘택트렌즈연구회 정회원
한국외안부연구회 정회원
대한검안학회 정회원
독일 레이저 연구센터 임상자문위원
위클리피플 인물지식가이드저널
news@weeklypeople.netㅣ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Click! 우리 시대 전문가를 발굴 조명합니다 [제보·취재]
news@weeklypeople.netㅣ02.6925.6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