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의미를 해석하며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지성의 플로리스트
문학박사 라복임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 라복임플로리스트학원 원장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흔히 길가에 핀 꽃들은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하면서 가장 먼저 계절을 알린다. 그 수수하고도 화려한 꽃의 모습은 늘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며 아름다움을 뽐내기 바빠 보인다. 자연의 기운을 한껏 머금고 피어난 꽃은 인간의 삶, 특히 인생의 절정기를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곤 한다. 저마다 ‘인생의 꽃이 피는 계절이 존재한다’는 식의 비유로 말이다. <위클리피플>이 만난 플로리스트 라복임 원장은 지혜가 깃든 꽃을 해석하고, 그 가치를 전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꽃과 함께한 그의 향기로운 삶을 들여다보자.
취재_김유위 기자, 신영경 기자 / 글_신영경 기자
군산에 위치한 라복임플로체.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곳에서 라복임 원장을 마주했다. 옅은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취재진을 따뜻하게 맞아주던 라복임 원장이다. 그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 우아하고 고상한 품격이 느껴졌다. 3층으로 이루어진 플라워숍은 꽃을 판매하는 공간과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라복임 원장은 학교와 학원 등지에서 수업을 가르치며, 꽃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중이다. 최근 라 원장은 제6회 한국예술문화 명인제도에서 화예부문 명인으로 인증을 받았다.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통과한 라 원장은 그동안의 활동 가치를 인정받아 공식적으로 명인의 자리에 우뚝 섰다. 스산한 겨울 끝자락에 핀 수선화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라복임 원장. 그에게 꽃은 어려서부터 설렘을 주던 고마운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꽃을 좋아했습니다. 꽃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남아있는데요. 눈이 내리던 7살의 어느 날, 우연히 동백나무에 핀 꽃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빨간 동백꽃은 머리카락이 쫑긋 설 정도로 제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요. 그 이후부터 계절에 따라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들이 너무나 예뻐 보였죠.”
전남 나주가 고향인 라복임 원장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광주로 이사를 갔다. 질박한 흙과 풀 내음이 가득한 시골 자연이 좋았다는 라 원장. 그는 “까만 연탄 길과 시멘트 담장으로 뒤덮인 도심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깨진 유리창을 테이프로 붙여놓은 꽃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창 너머로 하얀 국화가 보였어요. 고운 국화의 얼굴이 제 마음을 울리더군요. 제 관심사는 옷이나 화장품이 아닌 오로지 ‘꽃’이었어요. 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꽃꽂이를 처음 접했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꽃꽂이 학원을 등록해서 꽃을 배웠죠. 당시 월급이 15만 원이었는데, 꽃꽂이 교육비로 5만 원을 썼어요. 그만큼 꽃이 좋았습니다. 각박한 삶 속에서 위안이 되는 존재였어요.”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던 라복임 원장은 꽃을 통해 알 수 없는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라 원장에게 꽃은 기분 좋은 ‘설렘’이자 따스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꽃을 단순한 의미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터.
라 원장은 교회에서도 열심히 꽃꽂이 봉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가슴 뛰는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지인에게서 꽃집 운영에 대한 제안이 들어오게 된 것.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던 라복임 원장은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92년도에 지금의 라복임플로체를 오픈했다. 당시 ‘장미 꽃집’이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내디딘 라복임 원장. 그는 꽃의 흐름이 서구식으로 변해가는 것을 깨닫고, 웨스턴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전주로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90년대 말에는 주류였던 웨스턴 스타일에서 유로피안 디자인으로 꽃의 트렌드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꽃집 한 편에서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론에 대한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다는 생각에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죠. 수업을 하면서 이러한 부분이 참 안타까웠어요.”

꽃을 향한 라복임 원장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체계적인 이론을 습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전문성을 키워갔다. 2002년도에는 독일 플로리스트 과정을 마쳤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 원장은 상위 단계인 독일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과정을 이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때 큰 아이가 고3이었습니다. 저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시기인데,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참 많았었죠. 심적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아마도 가족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용기를 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마이스터 과정까지 수료하고 나니, 이론적인 조형의 체계가 어느 정도 세워지더라고요. 2005년도에는 EBS 교육방송에서 1년간 화훼장식기능사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꽃이 제 삶의 희망이었는데, 이제는 희망을 넘어 소양을 넓혀주는 계기로까지 발전하게 해주었어요.”
화훼전문가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춘 라 원장은 꽃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그중 첫 번째 변화의 시도가 ‘장미 꽃집’에서 ‘라복임플로체’로 이름을 변경한 것이다. 장미 꽃집이라는 이름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 플로체는 영어 ‘플라워’와 빛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로체’의 합성어로, ‘꽃 속에서 희망을 찾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라 원장은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이유에 대해 “스스로를 브랜딩 하면서 자긍심을 불어넣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라복임 원장은 오래된 건물을 신축하고, 꽃집과 학원을 보다 전문적으로 운영할 것을 계획했다. 이는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첫걸음이었다.
“올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특별하게 문학을 공부했어요. 꽃과 인문학의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오래도록 꽃을 만지면서 제 안에는 커다란 궁금증이 있었어요. ‘왜 이 꽃들은 나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까?’라고 말이죠. 어찌 보면 삶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이러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했습니다.”
라 원장의 말에 의하면, 꽃 속에는 지혜가 담겨있고 그 지혜는 삶을 밝혀주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꽃을 단순히 형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꽃이 지닌 미학, 라 원장은 바로 이것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꽃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꽃을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기까지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이에 라복임 원장은 “꽃을 물질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정신적인 가치로 소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정신으로 섭취하는 꽃의 문화’라고 표현한다. 라 원장은 후배 플로리스트를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요. 막상 이곳에 입문하고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르는 어려움이 크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꽃을 너무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술적인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의미를 담아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체계적인 학습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해요.”
라 원장은 향후 동양식 꽃꽂이 과정의 비율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양식 꽃꽂이는 면과 형태, 색감이 강한 서양식 꽃꽂이에 비해 선과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여백의 공간을 ‘내면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라복임 원장은 “동양식 꽃꽂이를 통해 내면을 잘 닦아낼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라고 전했다. 라 원장은 후진 양성에도 진력을 다할 예정이다. 기본기가 탄탄히 잘 세워져야 응용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라 원장의 설명. 이에 라복임플로체는 ‘기초과정’에 가장 공을 들이는 편이라고.
“92년도에 꽃집을 오픈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수업을 가르쳤어요. 지금도 30년 가까이 제자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원장님도 저와 벌써 20년 지기가 되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알바를 하러 왔다가, 자리를 잡고 여태껏 좋은 인연을 이어온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상당히 보람을 느끼죠.”

라복임 원장의 둘째 아들인 상준 씨는 이곳에서 실장으로 근무를 한다. 상준 씨는 같은 플로리스트로서 누구보다 엄마인 라 원장을 가장 존경한다고 이야기한다. 라복임플로체를 찾는 오랜 손님들도 대부분 라 원장과의 관계가 깊은 편이다. 장미꽃 한 송이라도 정성을 다해 포장을 하는 라복임 원장에게서 손님들은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라 원장은 사람도 꽃과 같이 저마다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라 원장의 삶을 통해 느낀 것은 본연의 가치가 서로 어울려 하나의 하모니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꽃과 함께 향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라복임 원장. 그의 아름다운 여정을 <위클리피플>이 응원한다.
profile
한국예술문화 화예명인
독일플로리스트 마이스터
라복임플로리스트학원 원장
(사)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 초록회 회장
군산대학교 평생교육원 플라워디자인 전담교수
(사)한국원예디자인협회 라복임플라워&가든 회장
원예디자인지침서 공동출간
배우기 쉬운 화훼장식 교재출간
EBS 화훼장식기능사 교재 공동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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